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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027

by arbitrary_unit 2020. 10. 27.

(트리거주의)

 

나는 어쩌다 이렇게도 모든 것을 미루는 사람이 됐을까. 자꾸 자꾸 미루다 보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쌓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있으면 온 몸에 미루고 미루다 해내지 못 한 모든 과제들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숨이 막힌다. 지금까지 해 오지 못한 것들이 이제야 업보가 되어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시끄럽게 떠드는 자극적인 예능을 배경음악처럼 틀어두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소음이라도 없으면 정말 견디기 어렵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내 모습이 좀비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딱히 우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다가 아무 생각 없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하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이 귀찮고 힘겹게 느껴져서 간단한 해결 방법을 찾고 싶단 마음이 드는 거다.

원래도 혼잣말을 자주 하는데 자기 비하 하는 말들이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내 삶을 조절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몸무게에 집착한다. 매일 아침 공복 상태에서 몸무게를 재고 기록한다. 무의식적으로 몸의 특정 부위들을 만져보면서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가늠해본다. 머릿속 한 켠에서는 이런 습관이 굳어지면 식이장애가 생길 거란 생각이 든다. 와중에 내 무의식적인 행동들을 메타적으로 관망하는 의식이 재밌게 느껴진다. 두 사람으로 나뉜 느낌이다.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생각이 많을까 하고 또 생각에 잠긴다. 인생을 되돌려서 다시 산다면 절대 석사는 하지 않을 거야 하고 후회한다. 아니, 애초에 철학을 전공하지 않을거야 하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분노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어떤 지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야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궁리해 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지점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내 인생을 완전히 새로 살지 않는 한 나는 언제나 이 지점에 당도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 수 밖에 없구나 하는 허탈함을 느낀다. 적당히 뇌를 비우고 살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들을 한다. 자꾸 도피하고 싶어서 운동에 빠진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일들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미루지 않고 차곡차곡해나갈 수 있으니까. 힘들게 몸을 일으켜서 하는 거라곤 결국 노트북 앞에 멍하게 앉아 있는 것과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을 터뜨리는 일 같은 것뿐이다. 항상 상냥한 지도교수님인데도 전화를 받게 되면 심장이 빨리 뛰어서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마음을 다스리기 어렵다. 스스로 한심해서 더 힘들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냥 포기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줬으면 진즉에 포기했을 거다. 졸업 못하면 취업을 하더라도 이 공백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어쨌든 졸업은 해보자고 푸념하는 나를 친구가 달래준다. 쏘우라고 생각해. 게임을 끝내지 않으면 못 빠져나가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울다가 그 말을 듣고 낄낄 웃는다.

 

내가 나라는 감옥에 갇혔다. 나는 생각보다 사람들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신적으로 연약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주 작은 세계 속에 안주하며 살아와서 작은 시련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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