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다이어리에 끄적이던 일정들 외엔 기록이라곤 거의 하지 않았던 요즘. 근래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페루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고 나서 나와 R, 그리고 한국을 방문한 R의 친구까지 셋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좀 나아져서 일상으로 돌아갈 때 즈음 연락을 받았다. 아빠가 뇌출혈로 입원을 했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며칠간 유난히 머리가 아팠다는 아빠가 어느 날 출근을 하지 않자 직원 한 사람이 집에 있던 아빠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MRI를 찍어본 결과 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큰아빠의 도움으로 암병원으로 이동해서 뇌종양이 아닌 뇌출혈로 진단을 받아서 서울대병원으로 입원했다. 엄마는 당일 저녁에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암병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별 일 아닐거라는 생각에 나와 동생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가 병원을 옮길 때 연락을 줬다.
당초엔 상황의 심각성을 알기 어려워서 혼란스러운 마음이 제일 컸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고 동생이 증평에 혼자 있는 까미를 돌보는 상황이 됐다. 시술 당일 나, 엄마, 그리고 큰아빠가 초조한 마음으로 아빠를 기다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시술 이후 아빠를 담당했던 교수님은 출혈 부위에 피딱지가 많아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긴 과정이었다고 설명해줬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정말 위험했다고 한다. 우리가 걱정할까봐 큰아빠께서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이때 고비를 넘긴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빠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나와 엄마는 매일 그런 아빠를 방문했다. 면회 시간은 하루 한 번 30분이고 방문자는 한 사람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아빠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지는 않았다. 처음 면회한 날 아빠는 울면서 내게 곧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네가 할 일이 많은데 아빠가 먼저 가게 돼서 어떡하니, 하면서 우는데 애써 웃으며 잘 회복하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답하는게 쉽지 않았다. 뇌경색 기운이 있어서 몸의 왼쪽을 잘 인지하지 못해서 몸의 절반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는데도 엄마는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고 종일 중환자실 근처를 배회했고 나는 엄마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와중에 까미를 증평에 혼자 둘 수 없어서 나와 R이 증평으로 가서 까미를 데려와 성산동 집에서 돌보게 되었다.
다행히 아빠의 상태는 많이 좋아져서 중환자실에서 준중환자실로, 그리고 다시 일반병동으로 옮겨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중환자실에서처럼 일일이 도와주고 봐주는 간호사가 없기 때문에 엄마가 24시간 간병을 하게 되었다는 것. 준중환자실이나 일반병동 둘 다 신경외과 전문 병동 안에 있고 코로나 때문에 면회는 일절 불가하다. 엄마는 아빠 옆에 있는 간이 소파 겸 침대에서 지내며 방문한 사람들을 잠깐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빠 곁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간병 자체도 정말 힘든 일이지만 초반엔 아빠가 자꾸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엄마가 힘들어했다. 나한테 울면서 전화해서 아빠를 좀 말려달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아빠도 상체 일부를 제외하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갑갑하고 우울해 하는 것 같다. 그나마 최근엔 전화로 업무를 좀 보면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 듯 하다.
벌써 한 달 정도기 지났다. 나의 일상도 이에 맞춰서 많이 변했다. 하루 중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 일과가 더해졌고 최대한 매일 병원을 방문해서 필요한 물품과 새로 한 빨래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601번 버스를 타고 신촌과 광화문을 지나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길이 익숙해졌다. 매일 조금씩 밀려오는 봄기운을 느끼며 창 밖으로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들을 보고 고궁 너머 솟아오른 인왕산을 보며 나는 병원으로 간다. 요즘은 주중 오전에 아빠에게 휠체어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때 시간 맞춰 가려고 노력핮다. 물론 그때 가더라도 꼭 아빠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갑작스레 수술이 잡히기도 하고 재활시간이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챙겨온 짐을 가지고 병동 옆 비상구 계단에서 한 시간, 두 시간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아빠는 보통 휠체어나 침대에 실려 병동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잠깐 얼굴 보며 인사나 하고 엄마랑 간단하게 점심을 먹거나 상황의 진척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의 절반은 지나갔어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거늘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운동을 가는 날도 있지만 그것도 생각을 지우기 위한 방편에 가깝다. 이제는 많이 울지 않지만 무언가를 해내기엔 힘이 한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건 내 방 한 켠에 있는 식물들. 방치하다 싶이 신경을 거의 쓰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들여다 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빼꼼 열고 창가에 식물들을 나란히 놓는다. 낮 동안 빛과 바람을 충분히 쐬게 해주고 늦은 오후에는 창문을 닫고 다시 제자리에 옮겨준다. 수경으로 키우는 필로덴드론의 뿌리를 깨끗하게 정리해줬더니 몇 주만에 건강한 새 뿌리들이 자라고 있다. 꽃치자는 잎사귀가 무성하지만 올 해 꽃을 보여줄지는 모르겠다. 시름시름 앓던 달개비는 조금 잘라서 물꽂이 해준 것과 뿌리를 정리해 준 모체를 식재해줬다. 당근을 통해 들여온 히메 몬스테라는 자라는지 자라지 않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아서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다시. 고통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이런 지겨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모든 상황의 틈새로 느낀 것들:
1. 가족 안에 얽혀 있는 여러 모습을 한 사랑
-아빠가 처음 아팠던 며칠간 엄마는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결과라고 여겼다. 중환자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읽던 시집에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 건강할 의무가 있다는 말, 그래서 내리를 비를 맞는 것도 가해자가 되는 일이라는 표현을 봤나보다. 그 말을 하며 엄마가 많이 울었다. 웬만하면 엄마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했던 나도 펑펑 울었다.
-병원을 옮기며 이런저런 서류를 떼던 엄마는 나는 이런거 잘 모른다며 낯설어 했다. 보통 이런 일은 아빠가 해결해주니까. 가장 아픈 순간에도 날 챙겨줘야 한다고 눈물을 흘리던 아빠에게 나는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다. 내가 느낀 세상은 쉽지는 않지만 단순하다. 그건 아빠가 우리 가족들이 번거롭고 복잡한 일들을 겪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써줬기 때문이다.
-가장 약한 순간에 서로를 받쳐주는 존재로서의 부부.
-R은 운전을 잘 못하는 나를 위해 증평으로 가는 운전을 대신 해줬다. 그늘진 얼굴을 하고 병의 원인과 가능한 후유증에 대해 꼼꼼하게 읽어보는 이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나와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이 사람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와 나는 가족과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2. 낯선 이야기들
-중환자실에 있던 시절, 면회 시간에 자꾸 잠 들려고 하는 아빠를 깨우기 위해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늘어놓곤 했다. 난 이렇게 입원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어떤지 잘 모르겠단 내 말에 아빠는 왜 없니 네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는데 라고 말을 했다. 만으로 두 살이 되기 전 텍사스에서 서울로 들어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서 구개열 수술을 했다고 한다. 구개열이 있다는 것도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나와 언니는 서울대병원에서 태어났다. 외과 중환자실은 서울대병원 본관 3층, 분만실 옆에 있다. 엄마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분만실을 지날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정일이 다가올 때 아이를 빨리 낳으려고 창경궁에서 종묘까지 걸었던 이야기, 큰엄마 레지던트 시절에 언니를 낳아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 언니가 태어난 날 아빠가 술을 마셔서 이모부가 병원까지 데려다줬다는 이야기, 다행히 내가 태어날 땐 큰 어려움 없이 낳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어느날은 걸어서 함께 혜화동 성당에 다녀왔다. 성모님을 잠깐 보고 가자던 엄마는 짧게 기도하고 걸음을 돌렸다. 엄만 대학 다닐 때부터 천주교 활동을 했냐고 물어보니 중학생일 때부터 성당에 다녔다고 한다. 내가 몰랐던 그녀의 이름은 마리나.
-그 외에도 처음 아빠가 큰아빠에게 엄마를 보여줬던 날의 이야기, 대학로를 함께 걸었던 두 사람의 추억, 아빠가 회사 사장이 되었다는 뜬금 없는 이야기, 코퍼스 크리스티에서 통발로 물고기를 잡았던 날의 추억들. 자기 얘기는 잘 하지 않는 우리에게 주어진 뜻밖의 귀한 시간.
3. 새삼스럽고 아름다운 것들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가다 지나가는 구급차를 보고 눈물이 났다. 아빠도 암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구급차를 타고 급하게 옮겨졌다고 들었다. 그를 위해 급하게 길을 열어준 모든 운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그 많은 비둘기와 길고양이들음 죽어서 어디로 갈까, 그 사체는 어디로 가는걸까, 밥을 먹다 말고 창 밖을 보며 이야기 하는 엄마. 마리나는 약한 이들에게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그 말. 나를 잘 아는 이들과 잘 알지 못하는 이들 모두 멀리서 진심으로 마음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까미 덕분에 걸어보는 성미산의 풍경. 서로 다른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과 햇반 그릇에 누군가 담아둔 밥을 먹으러 살금살금 내려오는 고양이들. 움트는 봄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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